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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 매거진

투기장의 주인 2

2017.06.22 오후 6:28:09

1816조회




투기장의 주인 2

 

: 허안

삽화: 마기

 

시간이 흐르고 이번에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사람은 두 명이었다.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였는데 프리엄의 태도는 그가 마스터에게 보이던 태도보다 한결 더 공손하였다. 올파스 그림을 상대할 때만큼의 진심은 없었으나 태도 만은 그에 못지않다고 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니모켄이나 펠릭시아에게 한 것보다는 조금 더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프리엄이 크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말했다.

 

“헤오샤 장군님과 앨러너데일님이 이런 곳까지 와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남자가 앞에 나서며 말했다. “너무 환대를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프리엄도 나름대로 온갖 예법에 능숙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지만, 이 남자처럼 자연스럽게 궁정 예법을 몸으로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여하간 프리엄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응했다.

 

“궁정악사장이시자 계관시인을 이렇게 직접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의 과분한 영광을 입었을 뿐, 허명만 있는 시인이며 음악가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분이 여기 있죠.” 그렇게 말하면서 동행한 여자를 가리켰다.

 

“알고 있습니다. 왕국군 제일의 무예를 지니셨다는 헤오샤 장군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과연 가까이서 뵈니 기세가 대단하십니다. 제가 무예는 모르지만, 투기장을 운영하다 보니 검투사는 많이 봐서 무사들의 위엄에 쉽게 움츠러들지 않는데 헤오샤 장군님은 척 봐도 다르십니다.”

 

헤오샤는 프리엄의 칭찬에 형식적인 반응을 보였고,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은 앨러너데일이었다. 주고받는 인사성 대화가 대충 마무리되자 비로소 대화는 용건에 들어갔다.

 

 

“라민 장군님은 다음 주의 투기장 행사가 이제까지와 달랐으면 하십니다.”

 

프리엄이 알기에 라민 장군과 헤오샤는 같은 계급의 장군이었다. 그리고 앨러너데일은 계통은 다르지만, 여하간 관직에 있는 몸이고 궁정악사장이니 조금도 존칭을 쓸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헤오샤는 국왕의 장녀이신 카오닐라 공주와 절친한 사이라고 하니, 반대로 그녀가 위세를 떨고 다니며 같은 계급의 다른 장군들을 무시하고 다녀도 될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헤오샤와 앨러너데일은 라민 장군이 마치 상급자나 대장군이라도 되는 듯 존경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마치 그가 몽크 마스터님을 대하는 것 같다고 프리엄이 생각했을 정도다.

 

말하는 일은 앨러너데일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헤오샤가 직접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이것저것 필요 없고, 공연히 피 튀기는 행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비록 국왕께서 베푸시는 위문잔치라지만 병사들은 평소에 하는 일이 전투고, 보는 게 마족이야. 사람끼리 싸우든 동물이나 마족을 붙잡아두고 싸우든 별로 재미있지 않다고. 그렇지만 국왕께서 베푸시는 행사를 취소할 수 없으니 살벌한 전투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병사들을 즐겁게 해주었으면 하는 게 라민 장군님 생각이야. 뭐 서커스나 연극이나 그런 것 있잖아. 좋은 생각이 없으면 여기 앨러너데일도 도와줄 거야. 명색이 시인이고 문장가니까 연극 대본 정도는 쓸 수 있겠지.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다시 수도를 떠나 변경으로 갈 병사들을 재미있게 해주면 돼. 단 실제 전투 없이 말이야. 그런 것은 수도의 시민들에게나 보여주도록 해.”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민 장군님과 헤오샤 장군님의 뜻을 알아 모시겠습니다.”

 

“뭐 내 생각은 아니야. 라민 장군님 생각이지.” 그냥 묻어가도 될 텐데 헤오샤는 굳이 이 의견이 라민 장군의 것이며 라민 장군이 얼마나 병사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지휘관인지 강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프리엄은 헤오샤와 앨러너데일을 상대로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정중하게 전송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혼자되었나 싶을 때 몽크 마스터 올파스 그림이 소리 없이 다시 방에 나타났다. 그리고 프리엄에게 말했다. “나갈 준비를 하게.” 프리엄은 어디 가는지 따위는 묻지도 않고 옷장에서 긴 로브를 꺼내 걸치면서 말했다. “밖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니 무르밀로 마스터가 성을 내며 이리로 오겠군요.” 프리엄이 로브를 입고 두건을 내리자 얼굴이 완전히 가려지며,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그런 모습의 프리엄에게 몽크 마스터가 말했다.

 

“자기 무리를 다 데리고 올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르밀로 마스터가 움직일 수 있는 검투사는 20명정도 입니다.”

 

“하긴 그렇게 한다면 펠릭시아는 생각보다 멍청한 여자일 테지. 그건 그렇고 현재 우리가 보유한 검투사의 수가 얼마지?”

 

512명입니다. 투기장 전체로는 천 명이 조금 넘습니다. 무르밀로 마스터 같은 검투 관련 마스터를 개인적으로 따르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스터께서 명령을 내리시면 마스터의 뜻을 따를 사람들입니다.”

 

“그렇기는 하겠지만, 돈이나 계약으로 묶여서 그러는 자들은 깊이 신뢰하지 않는 편이 좋다. 최근에 두각을 보인다던 그 격투가는 어떻게 되었나?”

 

“실력이 뛰어나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계약으로 더 단단히 묶어둘 생각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어지간한 마스터들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고 봅니다.”

 

“헤오샤와 앨러너데일이 다녀간 모양이던데 별일 없었나?”

 

“별일 없었습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었지만, 왕국군의 핵심인물들이 투기장에 자주 드나드는 것은 좋지 않아. 헤오샤는 무예만 높을 뿐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장군이니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라민 장군이라면 문제는 다르지. 감이 좋은 장군이라면 뭔가 문제의식을 느낄 테고, 그러면 문제가 커질 수 있어. 다시 말해서 라민이든 누구든 통제를 받지 않는 1천 명의 잘 단련된 무장병력이 합법적으로 투기장에 상시 거주하고 있다는 발상을 해내선 안 돼. 그러니까 검투사들의 숙소를 방문하겠다고 하면 무슨 구실을 대서라도 허락해서는 안 돼. 정 힘들면 무르밀로 마스터나 그쪽 사람들에게 안내하라고. 우리 측 검투사들이 규율과 소속감을 지닌 무장병력이란 사실은 드러나선 안 돼. 그러느니 싸움꾼이 떼로 모인 패거리 정도로 생각해 주는 편이 낫지.”

 

“그들은 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검투사가 상시 대기 중인 무장병력이라는 관념을 떠올리지 못할 겁니다. 설령 그런 생각을 떠올려도 투기장의 마스터들이 왕실에 충성하니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검투사들이 문제를 일으켜도 수도에 주둔중인 왕국군이 훨씬 많다고 생각할 테니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왕실경비대와 삼중성벽의 주둔군 병력은 객관적으로 투기장 검투사들보다 숫자도 많고 훨씬 강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우리 검투사들이 수도 적고 그들보다 전투력도 떨어져도 파악되지 않은 병력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어둠에 숨은 병력은 때로 실제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투기장을 암중에서 장악하신 마스터님의 계획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수도에 합법적인 병력을 보유할 편법을 지니면서 동시에 투기장 운영에서 오는 자금 덕분에 돈 문제까지 해결되는 셈이니까요. 다시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 그런 점에 비하면 나를 드러내지 않고 투기장에 관련된 마스터들을 다독이고 관리해야 하는 문제는 사소한 대가에 불과하지.”

 

“네 맞습니다. 그건 그렇고 펠릭시아가 와서 되지도 않는 불평을 터뜨리기 전에 오세아니드를 만나러 가시죠. 전에 저 혼자 갔을 때는 제 딴에는 해적이라고 얼마나 위세를 떨며 겁을 주어서 협상을 유리하게 하려 드는지 혼났습니다.”

 

“무예실력은 없어도 투기장에서 매일 보는 것이 검투사라 폭력적인 협박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게 자네 아니었나? 그렇게 말하니 이상하군.”

 

“우스워서 혼났다는 말이죠. 그러니 오늘은 동행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저쪽의 폭압적인 자세에 이쪽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마스터께서 나서서 위엄을 보이시면 그 해적이 그때도 당당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혹시라도 겁먹어주면 협상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오늘은 그럴 생각으로 여기 자네를 보러 온 것이니 어서 같이 나가세. 아까 말대로 펠릭시아 오기 전에 말이지. 그런데 이미 늦은 것 같군.”

 

“네?”

 

“방문 앞에 지금 막 누가 도착한 기척이 있어.”

 

“펠릭시아가 벌써 왔을 리가 없는데요. 아직은 죽은 제자를 붙들고 있을 텐데…”

 

그 말과 함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응대도 하지 않았는데 한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당한 기세로 문을 열고 들어온 청년은 몽크 마스터와 프리엄을 보더니 말했다. “이런, 손님이 계셨군요.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앨러너데일이 뭔가 빠뜨린 것이 있어서 급히 오다 보니 사전에 통보도 드리지 않고, 다른 손님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본래 군인이란 예고 없이 원하는 장소에 상대가 뜻하지 않은 시간에 나타나는 것을 목표로 사는 사람이니 너그럽게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제가 두 분을 적으로 여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 제 소개도 안 했군요. 저는…”

 

몽크 마스터 올파스 그림이 앞으로 나서며 인사하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라민 장군이시죠. 장차 왕국군의 최고 지휘관인 대장군이 되실 분이라는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뵈니 영광입니다. 저는 몽크들의 마스터 직을 맡고 있는 올파스 그림입니다. , 손님이 주인을 두고 먼저 인사를 하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이미 아시고 오셨겠지만, 이 분은 이 방의 주인이시고 이곳 투기장의 운영자이신 프리엄님이십니다. 여신의 열렬한 신도로서 저희 교단을 크게 후원해주고 계시기에 제가 가끔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프리엄이 인사를 마쳤을 때 라민 장군이 말했다. “차림새를 보니 막 외출하려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프리엄님은 추위를 많이 타시나 봅니다. 그렇게 얼굴도 안 보이게 차려입으신 걸 보니 별로 추운 날씨도 아닌데 말입니다.”

 

프리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몽크 마스터님 같이 수련으로 단련된 분이나 장군님처럼 험한 군생활을 겪으신 분들과 달리 저는 신체를 단련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하하. 그나저나 왕국의 장군께서 오셨는데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뵈어야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예고도 없이 찾아온 제 잘못입니다. 다만 제 부하들이 다음 주에 이 시설에 모여 공연을 본다고 하니 사전답사라고나 할까요한 번 투기장 곳곳을 둘러보고 싶은데 그래도 별문제 없겠죠?”

 

프리엄과 올파스 그림은 둘 다 잠시 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딱히 안 된다는 핑계를 대기 어려웠는데 상대가 하려는 일은 두 사람이 가장 꺼리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상대인 라민 장군은 왕실경비대의 대장 겸 왕실기사단 부단장이었다. 이 두 직책을 겸직한 일은 천 년 왕국 역사에 오직 아홉 명밖에 없었고, 그 아홉 명은 예외 없이 훗날 대장군에 올랐다. 왕실기사단장은 왕국군 전체의 총사령관인 대장군이 자동으로 겸직하는 자리다.

 

궁성을 책임지는 왕실경비대 대장은 전임자인 소드맨 마스터 라슈아 상장군이 물러나면서 강력하게 추천하여 라민을 앉혔다고 한다. 아직은 직책에 맞는 상장군으로 진급은 안 했지만, 둘 중 어느 직책을 내세울지라도, 딱히 별다른 이유 없이도 수도 내의 시설인 투기장을 보겠다고 한다면 막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상대에게는 지휘 책임을 맡은 부하들이 올 곳을 사전에 시찰한다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 있었다.

 

차선책은 프리엄이 시설을 직접 안내하는 것인데 하이레이번의 부하인 오세아니드와 약속이 코앞에 걸려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오세아니드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투기장 안을 돌아다니다가 라민 장군의 눈에 띄지 말란 법도 없었다. 라민 장군이 오세아니드의 얼굴은 모르고 그도 겉옷은 걸쳤겠지만, 팔뚝만 걷어 뱀 문신만 확인해도 상대방이 누군지 라민 장군이 모를 리가 없었다. 라민 장군이 지상군 지휘관이라지만 왕국 해군의 골칫거리인 하이레이번의 유명한 부하 해적의 특징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아니 꼭 군부에 있지 않더라도 이런 일에 관심이 있다면 알만한 사람은 아는 특징이다.

 

 

프리엄과 올파스 두 사람은 이 상황을 해결할 묘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라민 장군의 뒤쪽으로 두 사람이 더 나타났다. “그것 보라고. 내가 이리로 오셨을 거라고 했잖아.” 그 말을 하며 나타난 사람은 아까 나타났던 앨러너데일이었고, 그 옆에 따라온 여자는 역시 헤오샤 장군이었다.

 

 

혼자만 오면 어쩌냐? 이왕 온 김에 같이 투기장을 돌아보자 그런 말이 오가는 동안에도 올파스와 프리엄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결국 무르밀로 마스터 펠릭시아가 나타났다. 펠릭시아는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있자, 애초에 여기에 온 목적을 꺼낼 수 없었다.

 

투기장 관련자가 아닌 외부인들 앞에서 갑자기 대진표를 바꾼 프리엄과 아무리 투기장에서 적수로 만났기로서니 상대를 그냥 죽여버린 몽크 마스터에게 지닌 불만을 표출하기 어려웠다. 따지고 보면 투기장에서 대진표가 바뀌거나 사람이 죽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투기장 관련자들끼리 있을 때는 아끼는 사람이 죽었으니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지만, 투기장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서로 간에 인사가 오간 다음에 펠릭시아는 처음 만난 헤오샤 장군에게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왕국군 제일의 무예를 지녔다는 소문을 지닌 헤오샤이니 그 소문은 자연히 여자 가운데 최강자는 헤오샤라는 평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비록 상대가 왕국군의 장군이니 가서 따지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성 마스터로서 정말 이 여자가 나보다 명성이 뛰어나도 될만한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펠타스타 마스터 마리아 리드는 헤오샤 장군보다 오래전에 명성을 얻었으니 별로 헤오샤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고, 드라군 마스터인 발레스카 히밀이나 펜서 마스터인 소르샤 허턴은 원래 명망 높은 귀족 가문 출신이니 뭘 해보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노비 마스터인 유라 스와요네는 왕실의 그림자이니 양지로 나와서 호승심을 발휘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는 무르밀로 마스터 역시 헤오샤가 장군복을 벗고 투기장에라도 서지 않는 한, 궁금증을 풀 길은 없다.

 

물론 궁금증을 풀 방법이 없는 것은 마스터 상호 간에도 마찬가지다. 거의 천 년 전 타니엘 2세 시대에 이미 마스터 사이에 무익한 호승심에 의한 상호대결을 금지한 왕국법이 반포되었으므로, 특별한 사유 없이 누가 더 나은가를 이유로는 싸울 수 없었고, 그 이후로 이 왕국법 때문에 마스터 간에 생사를 건 싸움은 무척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루클리스와 리디아 샤펜의 경우라든가 하는 예외는 적지 않았지만, 오직 대결만을 목적으로 마스터 간의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왕국 법정에서 뚜렷한 사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해당자는 마스터에서 죄수로 순식간에 신분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펠릭시아가 등장하여 인사를 나누고 라민 장군이 여기 온 목적을 다시 밝히자 결론은 자연스럽게 투기장의 마스터이자 지분소유주이기도 한 펠릭시아가 투기장 이곳저곳을 안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예의 바른 인사를 나누고 펠릭시아가 라민 장군 일행을 이끌고 사라지자 프리엄이 몽크 마스터에게 말했다. “우리측 검투사들에게 급히 말을 전달하겠습니다. 라민 장군이라도 특별히 탐지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펠릭시아의 성격을 고려하면 투기장 전역을 다 보여주며 다니지도 않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라민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문제가 되진 않겠지. 설령 아니라 해도 일단은 오세아니드를 만난 다음에 의논해보세.”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 역시 프리엄의 방을 떠났다. 모두가 떠난 프리엄의 방이 어둠과 고요가 찾아왔다.

 

그 때는 아무도 몰랐지만, 이 날의 일은 왕국 수도에서 투기장이 폐장되고, 프리엄이 재판에 회부되는 엄청난 사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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