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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 매거진

하이레이번의 비공식 항해일지2: 칼날 서약단과의 조우

2017.05.22 오후 12:54:25

4517조회




하이레이번의 비공식 항해일지2

 

: 허안

삽화: 마기

 

선장실 창문으로 비친 햇살에 하이레이번이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매우 자주 꾸는 꿈을 다시 꾸었다. 조각배 위에서 이미 일어난 상황이 아닌 다른 일이 벌어지는 꿈이거나 그 결투 후에 뱃전을 오르는데 사다리가 늘어나며 영원히 오르지 못하거나, 올라선 배 위가 유령선이라거나, 아니면 지친 그에 대항하여 힘을 합쳐 반란을 일으킨 자기 부하들과 블라디슬로바스의 부하들이 나오는 등등, 내용은 다양하지만 장소나 근본적인 상황은 비슷한 그런 내용이었다.

 

옷을 차려 입고, 갑판으로 나오자 부하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시독 1항사는 선장이 나온 것을 보고 하이레이번에게 다가섰다. 하이레이번은 손을 들어 인사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다가 돌연 다가오는 1항사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눈을 들어 돛대 위의 망꾼을 바라보았다.

 

그 때 망꾼의 목소리가 들렸다. “3시 방향 돛대 출현.”

 

조금만 늦었으면 벌을 받았을 망꾼이 그 사실을 모른 채 다시 외쳤다. “선적 확인 불가. 상선 1.” 곧이어 다른 말이 들렸다. “선적 확인. 케도라 상단의 대여선.” 가까이 온 1항사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하이레이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명령을 대신했다. 망꾼보다 먼저 배의 기척을 느낀 하이레이번은 누군가 가져다 준 덱체어에 앉아 1항사의 지휘 아래 전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부하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제는 망꾼이 아니라도 상대편 상선의 상황이 훤히 보이는 거리에 도달하자, 곁에 있던 시독 1항사가 입을 열었다. “어라? 저것들은 뭐야?”

 

하이레이번의 눈에도 상선 갑판 위로 올라와 도열하고 있는 일단의 무장 병력이 보였다. 딱히 1항사의 혼잣말에 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이레이번은 이렇게 말했다. “재수없는 그에라 녀석의 칼날서약 용병단이 승객으로 타고 있나 보군.”

 

1항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선에 화물을 싣지 않고, 용병단을 태웠으면, 배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을 텐데 그런 조건이면 속도로 승부해서 저 같으면 그냥 달아나겠습니다. 칼날서약단 녀석들은 황금노래 용병단과 달리 전투물자도 많이 싣는 성향이 아닐 테니 용병단 화물도 많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체면이 떨어지면 앞으로 장사가 안 될 테니 싸워볼 생각인 모양인데 소원대로 해주지. 설마 그에라가 직접 지휘하려나?”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시독 1항사가 돛대 위로 시선을 주었다가 망꾼이 아무런 추가 보고를 외치지 않는 점을 확인하고 말했다.

 

하이레이번이 덱체어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도열한 모양세가 딴에는 백병전이라도 기대하는 모양인데 왜 내가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워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칼날서약 용병단이 큰 칼만 쓰는 것은 아니니 화살도 좀 쓸 줄 알겠죠.” 시독 1항사의 말을 하이레이번이 간단히 받았다. “해적의 싸움은 배로 시작해야 하고, 가능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말고, 그 배 단계에서 끝내는 편이 좋아. 이게 무슨 대해적의 이름을 걸고 블라디슬로바스와 싸우는 것도 아니니까.” 1항사가 알겠다는 대답을 우렁차게 하면서 하이레이번의 의중에 따라 지시를 내렸다. 자신의 지시가 이행되는 것을 보면서 하이레이번이 다시 덱체어에 앉았다.

 

 

싸움의 초반은 하이레이번측에게 매우 쉬웠다. 바람의 방향을 정확히 잡고 선 해적선에서 날리는 투사무기는 역풍을 뚫고 도달하지 못한 상대의 것들과는 달리 상선의 갑판에 선 용병단원의 수를 확실하게 줄여주었다. 물론 칼날서약 용병단도 투사무기에 일방적으로 맞는 상황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기에 방패 따위를 이용하여 피해를 줄이려 했다. 그러나 이곳은 바다였다. 육지에서는 포위되고 주위 사방에 더해 공중에서도 화살이 쏟아져도 큰 방패를 이용한 수비가 가능하지만, 바다에서는 육지와는 다른 변수가 있었다. 해적선이 움직임에 맞춰 나름대로 최선의 방향을 잡던 상선은 하이레이번이 보아둔 함정을 알지 못하고 바람과 해류의 복합 작용으로 배가 기울면서 심지어 때로는 거의 45도까지 눕혀졌다.

 

땅에서는 방패를 들고 화살비를 막아내고 있는 병사가 딛고 있는 땅이 갑자기 솟아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해상전투에서는 그런 일이 여기 있었다. 또한 가만히 있어도 배는 끊임없이 흔들리기 때문에 훈련된 선원이 아니면 선상에서 전투 중에 균형을 잡는 일조차 어렵다.

 

그렇게 충분히 적의 수를 줄이고서야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시독 1항사의 거친 음성이 부하들을 닥달했다. “갈고리 걸어 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 이 자식들아!”

 

부하 해적들은 익숙한 솜씨로 상선에 갈고리를 던졌고, 상당수가 상대 뱃전에 걸렸지만, 수가 줄어들기는 했어도 전투라면 나름대로 익숙하다는 칼날서약 용병단이 그걸 두고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칼날서약 용병단 특유의 대형 양손검들이 갈고리를 내리찍자 금속으로 된 갈고리들이 잘려나갔다.

 

그것을 보자 하이레이번이 덱체어에서 일어났다. “자식들 조금 하네.” 그 맡을 뱉고는 앞으로 달려나갔고, 하이레이번의 아이언후크가 상선을 향해 움직였다. 방금 다른 해적의 갈고리를 잘라낸 이름 모를 용병단원의 가슴팍이 절반으로 우그러졌다. 그렇게 한 명을 부순 갈고리는 그러고도 힘이 남아 상선의 뱃전에 깊이 박혔다.

 

다른 칼날서약 용병단원이 하이레이번의 갈고리에 대검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하이레이번이 그것을 보고칼질 하기 전에 총질부터 받아봐라.” 하면서 피스톨 샷으로 그 용병단원을 날려버렸다. 그러자 또 다른 용병단원이 그 역할을 대신하려 했다. 하이레이번이 다시 피스톨을 발사했으나 이번 용병단원은 실력이 더 좋은지 통하지 않았다. 하이레이번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간부 정도는 되나 보는군. 그럼 박힌 갈고리 말고 이걸 잘라봐.” 라고 상대방이 듣지도 못할 말을 하면서 다른 갈고리를 날렸다. 용병단의 간부는 두 번째 갈고리를 피하지 못하고 하이레이번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몸부림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벗어나지 못하고 끌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는 하이레이번쪽으로 끌려가면서 큰 부상을 매 순간 입고 있었다. 하이레이번은 끌려오던 상대가 미처 이쪽 배로 끌고 오기도 전에 킬홀링에 죽은 것을 알아차리자 그대로 두 배 사이의 바다에 그 간부 용병단원의 시체를 버렸다.

 

어느 새 양측의 배가 많이 가까워졌다. 하이레이번이 품에서 깃발을 꺼냈다. 하이레이번이 싱긋웃으며 시독 1항사를 보며 말했다. “블라디슬로바스가 이 거리에서 졸리로저를 성공한 적이 있나?” 선장이 일단 전투의 전면에 서자, 하이레이번에게서 명령이 나오면 그것을 반영하여 지휘하기 위해 곁에 있던 시독 1항사가 고개를 저었다. “이 거리에서요? 무립니다.”  하이레이번이 말했다. “맞는 말이야. 내가 아니면 무리지.” 그렇게 말하자마자 해적기가 그의 손을 떠나 두 배 사이의 수면을 가로질러서 상선에 가서 박혔다.

 

그리고 즉시 하이레이번의 말이 울려퍼졌다. “내 해적기를 욕되게 하지 마라. 가장 먼저 저 깃발 옆에서 적을 처치한 자는 상금 두 배다.” 시독 1항사가 그 말을 듣고 다시 외쳤다. “선장님 말씀 들었지. 가장 늦는 녀석은 갈고리에 달아 바닷물에 넣어 킬홀링을 해주겠다.” 아무도 그 말이 하이레이번이 한 말이랑 다르다고 항의하는 해적은 없었다. 모두가 함성과 괴성과 그 밖의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외치며 부지런히 상선으로 건너갔다.

 

하이레이번 역시 상선으로 건너갔다. 이미 숫자와 기세에서 밀리는데 하이레이번이 가담하자 칼날서약 용병단의 패색은 절망적으로 짙어졌다. 용병단의 마지막 남은 조장들을 하이레이번의 더스트 데블이 쓸고 지나가자, 그나마 하이레이번의 한 칼을 받아낼 실력자도 없는 상황에서 칼날서약 용병단의 소수 생존자는 마침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기 시작했다.

 

하이레이번의 부하들이 투항하지 않고 저항하는 용병단원을 전원 척살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배가 정리되고 전투의 여파를 피해 한 구석에 있던 이 배를 칼날서약 용병단에게 대여한 선원과 선장이 끌려 나왔다. 이들은 전투에 가담하지 않았고, 전투가 워낙 싱겁게 끝나서 조용히 숨어있는 것만으로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고 선내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면 숨어있든 아니든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이레이번이 잡혀온 선장과 선원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생각보다 적은 인원으로 배를 다루는 모양이군.”

 

포로 선장이 그 말에 대답했다.

 

그에라 단장과 그리 계약했습니다. 상단 소속 선원을 최소화하고 자기 용병단원들이 일을 분담하는 조건으로 가격을 깎았습니다. 게다가 용병단원을 가득 태워서 만원이 된 배치고는 저희 케도라 상단이 별도로 운영하는 화물도 많이 올렸습니다. 그래서 배를 유연하게 다루기 어려웠습니다. 용병단이 해전을 잘 모르면서 이것 저것 우리에게 전투 중에 이상한 요구를 한 것도 결국은 칼날서약 용병단의 오늘 패배를 가져온 원인 가운데 하나죠.”

 

보고에 의하면 무겁기만 하고 돈 별로 안 되는 화물이라던데 운임도 깎아주었다니 케도라 상단이 그래도 되는 건가?”

 

선장님 나타나기 전까지 다들 무기 풀고 갑판 닦고 있을 정도로 용병단원들은 나름대로 뱃삯을 계약대로 한 셈입니다. 그리고 화물은 돈이 안 되긴 하지만, 우리는 케도라 상단이니 어디 가야 이득을 올릴 수 있는지 잘 알고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 대목에서 포로선장이 약간 몸을 세우면서 말을 이었다. “배와 선원 그리고 화물을 풀어주시면 증서를 써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무사히 풀려나는 조건을 담은 증서로 케도라 상단의 어느 지부에 보이셔도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증합니다. 이 배에 실린 화물 가져가 보셔야 상인이 아니면 제값 받고 처분하기 어렵습니다. 보시다시피 대여선이라 최소 인원의 선원만 태웠으니 몸값도 그저 그럴 것입니다. 저희 상단 신용은 잘 알고 계실 테니 증서를 받으십시오. 케도라 상단에서는 저희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두 말 없이 돈을 내드릴 것입니다.”

 

그러니까 배와 화물, 얼마 안 되는 선원들 잡아다 처분해봐야 돈 별로 안 될 테니 상단 소속의 선장이 보증하는 증서를 받아라 그게 더 이익이다. 그 말인가? 너희들이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 상단에 퍼진 이후 돈을 찾으면 된다 그거고?”

 

, 그렇습니다. 저희 케도라 상단 내부의 정보망은 무척 빠르니 소식을 모든 상단 지부가 공유 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으실 겁니다.”

 

하이레이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다. 너희 케도라 상단 녀석들은 정말 손해를 보는 일이 없어. 어떤 때는 해적보다 더한 녀석들 같아. ! 용병단 생존자 녀석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은 우리가 챙긴다.”

 

하이레이번이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케도라 상단 소속 선장은 동의를 표시하였다. 칼날서약단의 생존한 포로와 그들의 물건이 하이레이번의 배로 옮겨졌다.

 

그 때 오세아니드 2항사가 하이레이번에게 다가와 물었다. “판자를 준비할까요?”

 

다른 해적단이나 상선의 선원들을 포로로 잡는 경우, 해적에 가담하든지 아니면 뱃전에 내밀은 판자 위를 걷게 하여 물에 빠뜨려 죽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하는 의식을 할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이레이번은 고개를 저었다. “잘 가둬두도록. 올파스 그림과 계약을 맺은 것이 있다. 포로가 조금 더 모이면 한번에 몽크 마스터에게 팔아 넘기도록 하겠다. 그러니까 다른 생각 못하게 적당히 굶겨서 힘을 빼고, 넘길 때 불평 나오지 않게 너무 굶기지도 말라고.”

 

어려운 명령이었지만, 오세아니드 2항사는 토를 달지 않고, 명령을 따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아무도 없자 하이레이번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에라 녀석, 이 일로 나를 찾아 바다로 나오면 블라디슬로바스 이후 오랜 만에 괜찮은 상대와 싸워볼 수 있겠군.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번에는 칼로만 상대해주지. 흐음 그러고 보니 크리크가 그에라의 경쟁 상대라는데 크리크란 녀석과 싸울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재미있겠군. 그렇다면 크리크에게는 블라디슬로바스에게 한 것처럼 머리에 총알 구멍을 내주면 좋겠군. 그 녀석 총도 잘 쓴다니 말이야.”

 

그 말을 마치고 하이레이번은 이제 막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케도라 상단의 배를 일별하고는 선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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